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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문화탐구

[일본소설번역] 먀아가 다니는 길-유이카와 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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먀아가 다니는 길
ミャアの通り道

 

유이카와 케이唯川恵 | 『みちづれの猫』集英社(2019/11/5)

에치고유자와역越後湯沢駅은 눈으로 뒤덮여있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볼이 아프다. 코트 칼라를 마주여미고 나는 플랫폼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갔다. 상행신칸센에서 호쿠호쿠선ほくほく線 특급 「하쿠타카はくたか」로 갈아타기 위해서다. 이미 열차는 진입해 있었고 9량 편성의 한가운데 있는 자유석5호차에 올라탔다. 차내의 승객은 3분의2 정도다. 그다지 붐비지 않다는 데 안심하면서 창가 빈자리를 발견하고 앉았다. 앞으로 2시간 반 정도면 가나자와에 도착한다. 가나자와金沢는 나의 고향이다. 도쿄역에서 에치고유자와역까지 온 것보다 아직 두 배 가까운 시간이 걸리지만, 이상하게도 호쿠호쿠선으로 갈아타면 기분은 ‘이미 가나자와’라는 느낌이 든다. 차창 너머에는 눈으로 뒤덮인 산들이 다가서 있다. 하늘은 낮고 구름은 수분을 가득 머금어 보기에도 무거울 듯하다. 차내는 난방이 잘 가동되고 있었다. 발치에 놓은 캐리어에서 페트병을 꺼내 차를 한 모금 마시자 출발 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덜컹하고 한번 앞으로 기울 듯 흔들리던 ‘하쿠타카’는 눈 사이를 달려 나갔다. 14년 전, 진학을 위해 18세의 나이에 상경했을 때도 이 ‘하쿠타카’를 탔던 기억이 난다. 그때 도쿄에서 처음 혼자 산다는 것이 불안하면서도 기대하는 쪽이 훨씬 더 컸다. 도시는 눈부시게 반짝이고, 세상의 즐거운 일들을 모두 품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곳에만 가면, 자신의 앞날도 금가루를 뿌린 것처럼 빛날 거라 믿고 있었다. 물론 현실은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금세 깨닫게 되었지만, 그래도 캠퍼스와 자그마한 아파트를 거점으로 삼아 나는 조금씩 자신의 세계를 넓혀갔다. 대학을 졸업하고 희망하던 이벤트기획회사에 취직했을 때는 얼마나 기뻤던가. 일은 재미있었고, 하루하루는 눈이 돌아갈 정도로 바쁘게 지나갔다. 잡무부터 시작해 현장에서 이벤트 설치를 경험하고 3년 후 염원하던 기획업무를 맡았다. 지금은 쇼핑센터의 캐릭터 쇼부터 백화점 행사, 영화 개봉 홍보, 브랜드숍 오프닝 파티까지, 다양한 이벤트에 참여하고 있다. 물론 모든 일이 잘 풀릴 리는 없으니, 문제도 끊임없이 발생한다. 고객에게서 심한 크레임을 받는 일도 종종 있으나, 차분히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경력을 쌓았다.
뒷좌석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쿠타카에 타는 건, 분명 이게 마지막이네.”
“아아, 봄에는 신칸센이 연결되니까.”
중년부부 여행객인 것 같다.
호쿠리쿠신칸센北陸新幹線이 가나자와까지 개통된다는 화제는, 올해 들어 더욱 자주 들려오고 있다. 여하튼, 지금까지의 절반 정도 시간에 도쿄와 가나자와 구간이 연결된다는 것이다. 기대하고 있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기존선인 ‘하쿠타카’는 이미 폐지가 예정되어 있다. 또 한 모금 차를 머금었다. 마침 점심때라서 도시락을 여는 승객도 있다. 차내에는 조림 간장 냄새가 떠돌고 있다.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그러고 보니 요전에 집에 돌아왔을 때가 언제였더라, 하고 멍하니 떠올려봤다. 확실히 3년, 아니, 4년 전이다. 할머니 법사가 있었다. 그때도 상당히 오랜만의 귀성이었지만, 겨우 1박2일이라는 바쁜 일정으로 도쿄로 돌아갔다. 본가로의 발길이 멀어진 것은 단지 귀성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만은 아니다. 업무 성격상 휴일에도 일하는 경우는 자주 있다. 오봉이나 정월, 골든위크와 같은 연휴도 마찬가지다. 가끔 쉬는 날이 생겨도, 그런 때야말로 하고 싶은 일이 산처럼 쌓여 있다. 정찰 겸해서 다른 회사가 주관하는 이벤트를 참관하기도 하고, 영화 시사회나 신제품 전시회에 얼굴을 내밀기도 한다. 이것도 업무의 하나다. 여유가 있으면 쇼핑을 가고 싶고, 여행도 가고 싶고, 애인과 데이트도 하고 싶다. 어쨌든 매일이 예정으로 꽉 차있어서 그만 귀성은 뒤로 미루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나만이 아니라, 세 살 위 언니도 매한가지일 것이다. 오사카로 시집을 간 언니는 시부모와 함께 요리점을 가족경영하고 있다. 게다가 한창 자랄 나이의 아이가 둘 있다. 자신의 시간을 내는 것도 쉽지 않을 터, 4년 전 할머니 법사 때도 돌아올 수 없었다. 또한, 두 살 아래 남동생은 독신이지만 유명제조업체 영업부에 근무하고 있어, 그야말로 밤낮없이 전국의 지사를 돌아다니고 있다. 삼남매가 모두 귀성해 가족전원이 얼굴을 마주 한 게 언제였던가. 생각도 나지 않는다. 지금의 우리들은 자신들의 생활로 힘에 겨운 상태다.

어느 샌가 잠들었던 모양이다. 눈을 뜨자 눈앞에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일본해다. ‘오야시라즈親不知’라 불리는 이 부근은 열차가 해안선 가까이 아슬아슬하게 달린다. 파도의 물보라조차 창문에 닿을 듯하다. 나는 유리창에 얼굴을 들이댔다. 안타깝게도 낮은 눈구름 탓에 바다는 흐릿한 색조로 가라앉아 있었지만, 그래도 이 풍경에는 언제나 매료된다. 놓치면 손해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급하게 휴가를 내기까지 해서 귀성을 결심한 건, 어젯밤 엄마에게서 문자를 받았기 때문이다.
‘먀아가 이제 슬슬 여행을 떠날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스마트폰을 쥔 손이 차가워졌다.
먀아는 본가에서 키우고 있는 잡종 암컷 고양이다.
그건 어언 이십년도 전, 딱 지금 같은 계절이었다. 밖에는 솜처럼 부드러운 눈이 흩날리고 있었다. 우리 삼남매는 저녁을 먹고 나서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아버지가 아직 귀가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계시면 이 프로그램은 보게 해주지 않기 때문에, 이때다 싶어 텔레비전 앞에 진을 치고 웃으며 대굴대굴 구르고 있었다. 아직 집에 텔레비전이 한 대 밖에 없던 시절이다.
앞마당에서 뭔가 묘한 소리가 들려, 하고, 말을 꺼낸 건 남동생이었다. 잠깐 보고 올게, 하고 툇마루 문을 열고 내려섰는가 싶더니 금세 서둘러 돌아와서는 “아기고양이가 있어.” 라며 외쳤다. 다음에 뛰쳐나간 사람은 나였다. 나무뿌리 앞에서 아기고양이가 웅크리고 있었다. 툇마루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에 비친 아기고양이는 남동생과 나를 올려다보며 마치 무언가를 호소하듯 필사적인 표정으로 울었다. 작은 등 위에 눈이 쌓여 몸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안아 올렸다. 툇마루에서는 언니가 이미 수건을 손에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고양이는 언니의 손에 건네지고 몸을 닦아주니 짙은 갈색과 검은색의 꿩 무늬가 떠올랐다. 태어난 지 2, 3개월쯤으로 보였다. 길을 잃은 걸까, 버려진 걸까. 눈에는 눈곱이 끼여 있고 털도 엷게 더러워져 있었다. 동생이 우유를 가져오자, 아기고양이는 어지간히 배가 고팠는지, 찹찹 소리를 내며 맛있다는 듯 홀짝였다. 그리고는 얼굴을 들고 마치 감사인사라도 하는 것처럼 ‘먀아’ 하고 울었다. 그 사랑스러운 모습에 우리는 순식간에 매료되었다.
“키우고 싶어”
“키우게 해줘”
“응? 괜찮지?”
우리 셋 모두 완전히 그럴 기분이 되어 있었다. 엄마는 곤란해 하면서 “아버지한테 물어봐야해”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한 시간 정도 지나, 아버지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셨다. 그 무렵에는 텔레비전도 제쳐두고 우리는 아기고양이에 푹 빠져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우리의 간청을 듣고 눈살을 찌푸리며 “안 돼”하고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아기고양이는 배가 불렀는지, 안심했는지, 방석 위에서 푹 잠들어 있었다. 엄마도 오셔서 아기고양이를 가족 다섯 명이 빙 둘러쌌다.
“어차피 너희는 귀찮아하겠지. 엄마한테 떠넘길 게 뻔하잖아.”
아버지의 의지는 단호해 보였다.
“부탁이야”
“절대로 잘 돌볼 테니까”
“그러니까 키우게 해줘”
우리는 끈덕지게 물고 늘어졌다. 그래도 아버지는 완강하게 받아들여주지 않았다.
처음 울음을 터트린 건 동생이었다. 나도 따라 울었다. 언니도 울었다. 언제나 다투기만 하던 남매가 이렇게도 한마음이 되어 아버지께 간청한 건 처음이었다.
흐느껴 우는 세 아이를 앞에 두고, 역시 아버지도 굽힐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그 대신 조건을 제시해왔다. 고양이를 돌보는 것만이 아니라, 언니에게는 설거지를, 나에게는 욕실 청소를, 동생에게는 현관 청소를 약속시켰다. 우리는 즉각 받아들였다. 그쯤으로 아기고양이를 키울 수 있다면야 쉬운 일이었다.
울음소리 때문에 이름은 ‘먀아’로 정했다. 그저 한 마리의 작은 고양이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 존재가 이다지도 집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고양이의 장난감이나 발톱 깎기 같은 펫 용품이 늘어나는 건 확실하다. 그렇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인간 이외의 생명체의 숨결이 장롱 위, 테이블 밑, 방 구석 등 지금까지 신경 쓰지 않았던 모든 곳에 가득해서, 마치 집 자체가 생명을 얻은 듯 맥박이 뛰는 것 같았다.
우리는 먀아를 귀여워했다. 서로 경쟁하듯 안고 싶어 했다. 그 때문에 가끔 다투기도 했다. 먀아의 입장에서는 귀찮은 이야기였을 것이다. 고양이는 원래 아이들을 어려워하는 동물이다. 드디어 차례가 돌아와 먀아를 무릎에 올려놓으면 그만 봐달라는 듯이 책장 뒤로 도망가 숨는 일도 종종 있었다. 또 한 가지, 먀아를 키우게 되면서부터 생겨난 습관이 있다. 그것은 어떤 때라도 서로의 방문이나 다다미문을 조금 열어둔다는 것이었다. 먀아가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하는 배려였다. 겨울이면 틈새바람이 들어와 춥다춥다 불평하면서도 결코 누구도 방문을 꼭 닫으려 하지 않았다. 먀아는 마음 내키는 대로 그날 밤의 잠자리를 정했다. 1층에 있는 아버지와 엄마의 6평(6畳) 침실. 2층에 있는 언니와 나의 공동 방. 옆방인 동생의 4.5평(四畳半) 양실. 어디를 선택할지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인간이 정해줄 수 없고, 강요도 할 수 없다. 모든 것은 먀아의 기분에 달려있었다. 이윽고 세월이 지나면서, 우리 남매는 조금씩 어른이 되어갔다. 언제부턴가, 먀아의 돌봄은 모두 엄마에게 떠맡기고 있었다. 약속했던 역할도 무너져 사라졌다. 우리는 친구와 사귀거나, 동아리활동의 연습이나, 좋아하는 남자나, 진학이라고 하는, 가족 이외의 세계에 관심이 깊어가고 있었다. 동시에 사춘기 특유의 고민도 안고 있었다. 부모에게 반항도 했고, 남매간에 격하게 말다툼을 벌였다. 서로가 서로를 무시한 적도 있다. 먀아는 그런 우리를 때로는 어이없다는 듯이, 때로는 애처롭다는 듯이, 짙게 둘러진 홍채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한때, 동생이 심하게 난폭해진 시기가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때, 부상으로 인해 축구부를 그만두고부터 가족 누구와도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식사 시간에도 얼굴을 내보이지 않고, 늘 불쾌한 얼굴로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언니도 나도, 그대로 은둔자가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지만,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지만 먀아를 위해 문은 언제나 조금 열어두잖니. 그렇게 하는 동안은 절대 괜찮아.”
그리고 실제로 그대로였다. 동생은 조금씩 고집스러움을 풀어갔다.

가나자와역에 도착한 것은 오후 3시가 조금 지났을 즈음이었다.
동쪽 출구에는 일본 전통악기의 북을 모티브로 만든 북문鼓門과 전면이 유리로 된 돔형의 천장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역 중 하나로 선정된 배경도 있어, 이곳을 견학하기 위해 가나자와를 방문하는 관광객도 있을 정도다. 개찰구를 나서자 아버지가 서있었다.
“마중 나와 주셨구나”
“아아”
엄마에게는 도쿄역에서 문자를 보내 두었다.
“일부러, 미안”
“오늘은 쉬는 날이니께”
오랜만에 듣는 가나자와 사투리가 귀에 부드럽게 와 닿는다. 아버지는 이런 말투를 썼던가 하고,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작년, 아버지는 정년퇴직을 맞이했다. 은행원이었기도 해서 지금은 일주일에 세 번, 지인의 회사에서 경리 일을 도와주고 있다고 들었다.
“먀아는 어때?”
“마, 오래 살았응께”
아버지는 무뚝뚝하게 말했다. 원래 말수가 적은 사람이다. 둘이서 서쪽 출구에 있는 주차장으로 나왔다. 이쪽은 동쪽 출구와 다르게, 합리적이고 도회적인 분위기다. 백색선 안에 세워 둔, 이미 십년 넘게 타고 있는 아버지의 남색 세단 조수석에 탔다.
“이쪽은 아직 눈이 내리지 않네. 에치고유자와역은 대설이던데.”
“연말에 내렸는데, 다 녹아버렸어”
가나자와에서 살던 시절, 눈이 내릴 때마다 지긋지긋했다. 교통이 마비되고, 일정은 엉망이 되어 버린다. 고린보香林坊와 가타마치片町에 나가려 해도, 물기가 많은 눈이라 가죽 부츠도 신을 수 없다. 그렇지만 이렇게 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어딘지 허전한 느낌이 든다.
자동차는 로쿠마이마치六枚町를 지나, 무사시가쓰지武蔵ヶ辻を를 빠져나갔다. 본가는 아사노가와 대교浅野川大橋 근처의 하시바초橋場町에 있다. 신호 대기에 걸려 멈췄을 때, 아버지가 말했다.
“아까 미유키도 돌아왔어야”
“엣, 언니도”
무심코 얼굴을 돌렸다.
“먀아를 어떻게든 만나고 싶었다나봐”
“흐응”
나 이상으로 언제나 바쁘기만 한 언니다. 그렇지만 그 기분은 어쩐지 알 것 같았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언니가 나와 맞아주었다.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언니가 웃는다. 조금 살이 쪘는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는 멋부리기에 시끄러울 정도로 말이 많았는데, 지금은 완전히 시집간 오사카 풍 아줌마 스타일이 자리를 잡았다.
“응, 언니도 건강해보여. 그건 그렇고 잘도 시간을 냈네.”
“엄마한테서 문자 받고, 모두 팽개쳐두고 온 거야. 뭐, 이런 일도 아니면 마음먹기가 어려우니까. 자, 들어와, 들어와.”
콧속으로 마른 골풀과 비슷한 냄새가 퍼져갔다. 집의 냄새가 그리워진다. “아아. 돌아왔구나.” 라는 기분에 어깨에서 힘이 풀려나간다. 그럴 작정은 아니어도 언제나 어딘가 힘이 들어간 채 살고 있는 자신을 깨닫는다. 거실에서 먀아 곁에 앉아 있는 엄마가 얼굴을 들었다.
“모처럼, 돌아와 주어서 잘됐다. 일은 괜찮은 거니?”
“응, 연차도 쌓여있었고”
방 한가운데 깔려있는 모포 위에서 먀아는 잠들어 있다. 핑크와 노랑 꽃무늬 수건에 덮여 있다. 나는 다다미에 무릎을 꿇고 먀아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다녀왔어, 먀아”
말을 걸어도 반응은 없다. 손가락 끝을 먀아의 이마에 살짝 대보았다. 그곳을 쓰다듬으면 늘 황홀해하면서 손발을 바르작거리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4년 전에 봤을 때보다 먀아는 완전히 작아져 있었다.

저녁은 스시를 주문하기로 했다. 집에 돌아오면 엄마는 주방에 틀어박히게 된다. 고맙지 않은 건 아니지만 오늘은 그보다 될 수 있는 한 먀아의 옆에 있게 하고 싶었다.
“언제부터 나빠졌어?”
엄마가 먀아에게 수건을 고쳐 덮어주면서 말했다.
“지난 달 말쯤인가, 밥도 잘 안 먹고, 물도 잘 안마시게 됐어. 아무래도 신장 기능이 저하된 모양인데, 먀아는 이미 인간으로 치면 백세 정도 된 거잖니. 의사도 결국 노쇠한 거라더라.”
엄마는 마치 자신을 다독이듯이 설명했다.
“그렇구나. 먀아는 벌써 그렇게 할머니가 된 거구나.”
“산소실에 들여보내는 것도 좋다니까, 잠시 동안 병원에 맡겼지만, 아버지와 상의해서 역시 데리고 돌아왔어. 먀아로서도 모르는 곳에 있는 건 불안할 테고, 마지막은 우리가 지켜봐주자고 생각해서.”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귀에 아프게 울린다.
그건 열흘 정도 전의 일이라고 한다. 의사로부터 산소실을 나가면 2, 3일밖에 버티지 못한다고 들었다는 데, 먀아는 힘을 냈다. 잠깐은 몹시 기분 좋게 지냈다고 한다. 그러다 어젯밤, 갑자기 용태가 악화되었다는 것이다.
“그치만 아주 편안한 얼굴을 하고 있어”
“그러게, 이러고 있으니까 그냥 잠든 것처럼 보여”
언니도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있으니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스시가 도착했나보다고, 언니가 일어나 나갔다. 그러나 떠들썩한 목소리와 함께 거실에 나타난 사람은 동생이었다.
“어머나, 너까지 왔구나”
엄마가 어이없다는 듯 맞이했다.
“딱 좋을 때 시간이 났어”
“그런 문자 보내서 미안해. 오늘 어떻게 될지 사실은 알 수 없는 건데”
“아냐, 나도 마침 먀아가 어쩌고 있나 신경이 쓰였어. 그건 그렇고 설마 누나들도 올 줄이야.”
동생은 나와 언니 사이로 비집고 들어와 먀아에게 손을 뻗었다.
“먀아, 나야. 봐봐, 눈을 떠봐.”
그럼에도 먀아는 움직이지 않는다. 오랜만에 만난 먀아가 너무나도 작아져 있어서 동생은 머뭇거리듯 눈썹을 찡그렸다.
“한 사람이 늘었으니, 역시 뭔가 만들게. 있는 재료로 할 수밖에 없지만”
하고, 엄마는 주방으로 갔다. 아버지는 맥주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복도에 난간이 달려 있데”
부모님이 자리를 떠난 틈을 타서, 동생이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그것은 나도 알아차리고 있었다. 현관에 들어선 순간 눈에 들어왔다.
“복도만이 아니야, 계단에도 화장실에도 달려 있어” 대답한 것은 언니였다.
“아까 조금 들었는데, 엄마가 작년 연말에 복도에서 넘어져 발을 삐었대. 한동안 목발을 짚고 있었던 모양이야”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싫다,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잖아. 너는 알았어?”
“아니, 전혀” 하고 동생이 고개를 흔들었다.
“대단한 부상이 아니었으니까 쓸데없는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대. 하지만, 그때부터 앞일을 생각해서 역시 난간을 설치하는 편이 좋겠다며 하게 된 거래”
“그렇구나...”
나도 모르게 숨을 내쉬었다. 동생도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 것 같았다. 잠시 동안 세 사람 모두 잠자코 있었다. 부엌에서 아버지와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병따개는 어디 있어, 식기찬장 아래 서랍에, 안주는 없나, 냉장고에 치즈가 있어, 그런 일상적인 대화가 흘러나온다. 
“아까 말이야”라고 동생이 중얼거렸다. 
“방에 들어와 오랜만에 아버지를 봤을 때 가슴이 덜컥했어. 어쩐지 나이가 드셨구나 싶어서. 역시 정년퇴직한 탓도 있는 걸까.” 
확실히 아버지의 머리카락은 이미 삼분의 이가 백발로 변하고, 표정에도 깊은 주름이 두드러져 보이는 것 같다. 엄마도 어느새 등이 굽고 먀아와 마찬가지로 몸이 한껏 작아진 느낌이 든다. 
“바빠서 요즘 좀처럼 돌아오지 못했으니까” 
그렇지, 하고 나와 언니도 덩달아 고개를 끄덕였다. 부모님이 늙어가는 것을 깨닫지 못했던 건 아니다. 다만 머릿속에 있는 부모님은 언제까지나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자신보다 크고, 무섭고, 강한 존재였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그래주기를 바라는, 딸과 아들의 일방적인 생각이었겠지. 현관에서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야말로 스시가 도착한 모양이다. 모두 주방 식탁으로 이동했다. 스시 접시를 한가운데 두고 엄마가 만든 절임이랑 지역특산 계란요리랑 삭힌 정어리 등 수제요리가 나란히 놓였다. 맥주를 따르고 식사가 시작되었다.
언니가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먀아에게 눈을 돌렸다.
“미안해, 자주 집에 돌아오지 못해서”
조용히 흘러나온 그 말이 먀아에게만 향한 것은 아니라는 걸 나도 동생도 알고 있었다.
집을 나가고부터 계속 우리는 “바쁘다”는 핑계로 부모님은 뒷전으로 미뤄두고 있었다. 우선순위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예정이나 사정이었다. 그러는 동안 아버지와 엄마의 곁에 다가가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은 먀아였다.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죄책감과도 닮은 아픔이 솟구쳐 올라왔다. 아무래도 분위기가 가라앉아버렸다. 아버지는 변함없이 말씀이 없으시고 엄마는 어딘지 마음이 떠있었다.
“시끌벅적하게 하자”고 동생이 말을 꺼냈다.
“들은 이야기가 있어. 동물은, 마지막까지 귀가 들린다나봐. 먀아도 우리의 명랑한 목소리를 들어야 안심할거야”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슬픔을 억누르는 것이 아닐 것이다. 언니가 오사카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냈다. 동생은 출장지에서 겪은 실수담으로 모두를 웃겼다. 나도 질세라 언니와 동생의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거기에다 어렸을 때의 추억 이야기도 얽히면서, 부모님의 표정도 점차 풀어졌다. 명랑하게 웃고 있어도 각자 골칫거리를 안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언니는 시어머니와 그다지 잘 지내지 못하는 것 같다. 가족경영이 되면 부딪치는 일도 많을 것이다. 또한 농담을 던지고 있는 동생도 모든 것이 순조로울 리는 없을 것이다. 최근 회사가 대기업에 흡수 합병되었다. 그 때문에 미묘한 입장에 처해 있는 것이 상상이 된다. 나 자신도 반년 전 결혼을 약속한 남자가 떠나버렸다. 그 상처는 아직도 깊게 남아있다. 그렇지만 누구도 불평 같은 말은 입에 담지 않았다. 그 정도의 행동은 할 수 있을 만큼 이미 어른이 되어 있었다.

 

먀아가 의식을 되찾은 것은 식사가 끝나갈 즈음이었다. 
“아, 눈을 떴다”하고 아버지가 제일 먼저 알아차렸다. 
우리는 황망히 가까이 달려가 먀아를 둘러쌌다. 들여다보니 확실히 눈을 뜨고 있다. 그 눈은 놀랍도록 맑았다. 그 눈으로 먀아는 천천히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엄마를 보았다. 다음은 언니를, 그리고 나를, 동생을 보았다. 그 눈은 끝없이 깊은 바다와도 같았다. 그 때가 왔다고 모두가 생각했을 것이다. 먀아는 남은 힘을 쥐어짜서 우리에게 작별을 고하고 있는 것이다. 그랬다. 이윽고 만족했다는 듯이 먀아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처음 눈물을 흘린 사람은 아버지였다. 어깨를 떨며 우리에게 숨기려하지도 않고 오열했다. 엄마도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려하지도 않고 먀아의 이름을 계속 불렀다. 우리 남매는 잠자코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먀아가 이 집에 왔던 날, 키우고 싶다며 흐느껴 운 건 우리들이었다. 그날로부터 20년. 지금 울고 있는 이는 아버지와 엄마였다. 가슴을 죄어오는 건 먀아를 향한 슬픔만이 아니다. 우리는 확실히 지금 지나온 세월의 무게를 곱씹고 있었다. 이곳에 세 남매를 부른 것은 먀아의 마지막 의지임이 틀림없다고 생각되었다. 먀아는 떠났다. 그렇지만, 먀아가 돌아다니던 그 열린 문의 틈은 절대로 닫힌 것이 아니다. 언제나 가족과 연결돼 있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중얼거리고 있는 건 언니도 동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느덧 툇마루 너머에서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다. 먀아가 이 집에 왔던 그 때와 똑같이, 솜처럼 부드러운 눈이었다.

 

▷원문 : 『みちづれの猫』試し読み | 集英社 文芸ステーショ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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