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즈 사강을 좋아하는 그녀는 ‘조제’라 불리고 싶었다.
그러면 그 책의 등장인물인 듯한 기분이 되니까.
영화 <조제>는 일본의 대표적 여성작가 다나베 세이코田辺聖子의 단편집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ジョゼと虎と魚たち> 중 표제작을 원작으로 국내 정서에 맞춰 각색한 작품이다. 1985년 발표된 이 소설은 낭만적이지만 현실적이기도 한 러브스토리이기에 강렬한 매력으로 독자들을 끌어당긴다. 그로 인해 일본은 물론 국내에서도 영화화된 데 이어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었다.
다리가 불편한 구미코, 즉 조제는 자유롭게 외출하지 못하는 우울함에 성격도 말투도 조금 사납다.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본능이겠지만. 가난한 대학생 츠네오는 유모차에 탄 채 언덕길에서 굴러가는 조제를 구한 것을 계기로 그녀와 할머니가 살고 있는 집을 왕래하게 된다. 집에만 틀어박혀 자신만의 세계에 파묻혀 지내던 조제는 츠네오를 만나면서 사랑을 알게 되고 조금씩 세상으로 나아가 현실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된다.
이 이야기는 일찍이 일본에서 이누도 잇신 감독의 동명영화(2003)로 제작되어 국내에서도 인기를 모은 바 있으며, 김종관 감독의 한국 영화 <조제(2020)>에 이어 최근에는 다무라 고타로 감독이 연출한 애니메이션이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상영된 뒤 2021년 개봉을 앞두고 있다. 세 작품 모두 원작소설과는 조금 차이가 있는데다가 각각 다른 결말과 감성을 선보인다는 것이 흥미로운 부분이다. 밝고 제멋대로인 일본영화판 조제, 조용하고 어른스러운 한국영화판 조제. 그렇다면 애니메이션에서의 조제는 어떻게 그려질까 궁금해진다.
프랑수아즈 사강(Françoise Sagan)의 <한 달 후, 일 년 후Dans un mois, Dans un an, 1957>에 등장하는 조제라는 인물은 사랑의 위약함을 잘 알고 있는 영리하고 매력적인 여성이다. 구미코처럼 사강도 조제를 좋아했는지 4년 후 발표한 <신기한 구름Les merveilleux nuages, 1961>에 재등장한다. 막연한 허무함과 체념이 배어있는 사강의 탐미주의 소설에서 조제는 무엇을 느꼈을까?
언젠가는 사랑하지 않는 날이 오겠지. 그러면 흘러간 세월만 남게 될 거야.
어쨌든 조제는 좋아하는 남자에게 의지해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고 생각한 호랑이를 동물원에서 볼 수 있었고, 죽음의 세계와도 같아 보이는 수족관의 물고기를 바라보면서 만족감을 느낀다. 그 세계에서는 모두 똑같은 상황에 놓이니까. 만남에도 이별에도 다양한 이야기가 있듯이 사람은 누구나 조금은 특별한 경험을 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언젠가는 사랑은 서서히 식어가고 이별이 담담하게 다가온다. 작가는 사랑과 죽음과 이별이 같은 맛이라고 표현했는데, 어쩌면 사랑과 고독이야말로 같은 맛일지도 모르겠다. 감각적인 영상미가 빛나는 ‘조제’의 특별한 사랑 이야기. 이번 겨울 로맨스영화에 대한 갈증을 풀어줄 청춘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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