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
母性, Motherhood
베스트셀러 작가 미나토 가나에湊かなえ의 원작소설을 감독 히로키 류이치가 영화화한 작품 《모성》은 세상에서 가장 가깝고도 먼 사이인 “엄마와 딸”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다. 읽고 나면 싫은 기분이 들게 만드는 ‘이야미스(イヤミス)’를 주로 쓰는 작가의 성향은 여전하지만 사건 자체보다 인간의 심리를 다루는 절묘한 솜씨가 돋보이는 문제작이다. 모성은 본능일까, 아니면 경험에 의해 생성되는 것일까? 개인적으로는 엄마가 되어보지 않고는 절대로 알 수 없는 뭔가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때로는 엄마가 되고서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니 애초에 논할 가치가 없는 우문일는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다루고 있는 논제는 그런 원칙적인 개념이 아니라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모성에 대한 다양한 심리에 대한 것이다. 사람은 각자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도 다르고 받기 원하는 사랑의 형태도 다르다. 엄마와 딸 사이도 마찬가지. 흔히 모녀 사이에도 궁합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나 아무리 좋던 사이라도 어떤 사건으로 인해 한순간에 일그러져 버릴 수도 있으니 인간의 마음이란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 것인지를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에서 하나의 사건을 엄마의 증언과 딸의 증언으로 나눠 보여주는 당시의 상황은 각각의 시선에 의해 확연히 다르다. 여고생의 사체가 발견되었다. 사고인지 자살인지 진상은 불명. 여고생의 엄마는 금지옥엽으로 키운 딸이 이렇게 된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고 전한다. 이 사건의 기사로 이야기는 시작되고, 엄마의 고백과 딸의 회상이 서로 교차하며 진실을 더듬어 간다. 같은 시간, 같은 상황을 회상하고 있거늘, 두 사람의 이야기는 점점 엇갈리는 양상을 보인다. 평범해 보이는 일상에 조용히 새겨지는 상흔. 엄마와 딸이 각각 털어놓는 두려운 ‘비밀’은? 두 개의 고백에 사건은 180도 역전해 이윽고 충격의 결말로 향한다.
엄마의 증언
「나는 딸을 강하게 끌어안으며 말했다. 사랑한다고.」
나의 사랑을 담아 딸을 소중하게 키웠다. 하지만 그 마음은 딸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아니, 전해졌다면 자신이 내게서 빼앗은 것이 얼마나 큰 것인지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 안에서 그날의 꺼림칙한 기억이...
딸의 증언
「무엇을 하면 엄마는 나를 필요로 할까, 어떻게 하면 엄마는 나를 사랑해줄까.」
나는 한순간 안아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홀로 안고 있던 슬픔을 지금부터는 둘이서 공유하게 되는 거라고, 기쁨과도 같은 감정이 솟구쳐 올라옴과 동시에 목에 강한 압력을 느꼈다. 엄마에게라면 살해당해도 좋아. 하지만 그럼 안 되잖아...
여기 사랑해주지 않는 엄마와 사랑받고 싶은 딸이 있다. 엄마는 자신의 어머니를 너무나 사랑했고 그만큼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그리고 딸을 낳았다. 모든 면에 있어 어머니에 동조하고 인정받고자 애썼던 자신과는 조금 다른 딸을 배려와 공감을 아는 예의바른 아이로 키우려 노력했다. 딸은 외할머니 앞에서 가끔씩 예민해지는 엄마의 기분을 거슬리지 않으려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태풍이 불던 날, 아름다운 그들의 집과 외할머니가 화재로 사라진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모성에 뒤틀린 건 엄마인가, 딸인가? 이야기는 모든 것을 목격한 관객, 즉 “당신의 증언”으로 완성된다.
<등장인물>
토다 에리카: 루미코
나가노 메이: 사야카. 루미코의 딸
다이치 마오: 루미코의 엄마
타카하타 아츠코: 루미코의 시어머니
미우라 마사키: 루미코의 남편
나카무라 유리: 루미코의 친구
야마시타 리오: 루미코의 시누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여성이 있다고 한다. 엄마와 딸. 즉, 우선순위의 이야기다. 무슨 일이 닥쳤을 때 엄마로서 사고하는 스타일인가, 딸의 입장이 먼저인가에 대한 문제다. 우리는 늘 ‘엄마’도 ‘딸’이라는 사실은 잊고 살아간다. 루미코는 사랑받는 딸이고 싶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엄마를 잃고 나자 구박하는 시어머니라 할지라도 애정을 갈구했다. 사야카도 엄마의 사랑을 받고 싶었다. 친할머니의 괴롭힘에서 엄마를 구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애정에서 비롯되었을지라도 두 개의 마음은 부딪치고 만다. 어쩌면 위대한 모성을 베풀었던 외할머니의 선택이 오히려 비극을 낳은 것일지도 모르고, 편향된 애정을 쏟아 부었던 친할머니는 딸에게 외면 받는 현실을 보며 지독한 씁쓸함이 남는다. 뭐든 지나치지 않은 것이 가장 좋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해야 할까. 내 엄마이기 이전에 할머니의 ‘딸’인 ‘엄마’를 새삼스럽게 떠올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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