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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空の卵] 사카키 쓰카사의 데뷔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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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umei 2020. 12. 2.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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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키 쓰카사坂木司의 연작소설집 [푸른 하늘의 알靑空の卵]은 일상의 수수께끼라고는 해도 미스터리로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 그것보다는 두 청년의 성장에 의의를 두는 게 낫다고 보는데, 이미 사회인이 된 그들에게 성장물이라 표현해도 될는지 의문이다. 게다가 작가들이 쓸데없는 잔소리가 많아 지루하다는 엄마의 불평이 이해가 가는 것이, 이 작품이 딱 그랬다. 덕분에 400페이지에 가까운 두꺼운 장편이 되고 말았고, 그것이 독이 되어 버린 듯싶다. 결국 이도저도 조금씩 미진한 작품이라 할 수밖에 없겠지만, 작가의 데뷔작이니까 조금 아량을 베풀기로 하자. 왜냐하면 부족분을 상쇄할만한 꽤 괜찮은 작품이 이후 여러 편 출간되었으니까 말이다.

 

 


작품 속 등장인물 나, 즉 사카키 쓰카사와 은둔형 외톨이 도리이 신이치로 말하자면 셜록과 왓슨 콤비에 브로맨스를 섞은 느낌으로, 2002년 발표한 이 작품을 시작으로 일명 ‘은둔형 외톨이 탐정’ 3부작 시리즈가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仔羊の巣(어린 양의 보금자리), 動物園の鳥(동물원의 새)로 완결된 이 시리즈의 성공에 재미를 붙였는지 <끊어지지 않는 실>의 세탁소집 청년 가즈야와 그의 친구 사와다도 비슷한 구성이다. 뭐 은둔형 외톨이가 먼저니까 가즈야와 사와다는 아류 쯤 되겠지만 그쪽이 더 재미가 있다. 암튼 성격 좋고 평범하고 성실한 청년이 주위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상황에 의문을 이야기하면 그걸 들은 집콕 생활의 절친이 수수께끼를 풀어내어 산뜻하게 정리를 해준다는 이야기다. 


"生きていく上での幸福は、誰かとわかちあう記憶の豊かさにあると僕は思う。"
살아가는데 있어 행복은 누군가와 서로 나누어 갖는 기억의 풍부함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 夏の終わりの二重奏 늦여름의 이중주
슈퍼마켓에서 부딪친 젊은 여자. 도우려하자 오히려 화를 내는 이유는? 한편, 동네에 싱글남을 괴롭히는 수상한 인물이 나타났다.
 秋の足音 가을의 발소리
우연히 만난 시각장애인에게 도움의 손을 내민 사카키. 그런데 자신을 따라다니는 쌍둥이가 누구인지 알아봐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冬の暗いもの 겨울의 어둠
가부키 배우에게 보내오는 수상한 선물의 의미는? 발송인의 이름도 없는 소포를 받은 후 반드시 편지가 뒤따라오는 것도 이상하다.
 春の子供 봄의 아이
역 앞에 우두커니 서있는 아이가 신경이 쓰이는 사카키. 결국 명함을 쥐어줬는데 연락이 왔다. 하지만 극도로 말수가 없는 이유는?
 初夏のひよこ 초여름의 히요코(과자)
일 년간 사카키가 물어온 수수께끼를 풀면서 도리이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아버지와의 관계도, 타인과의 관계도. 

요리가 취미인 도리이의 식탁에서 사카키는 그의 주위에서 일어난 수수께끼 같은 일을 이야기한다. 날카로운 관찰력과 논리적인 사고력을 지닌 도리이는 사소한 단서만으로도 진실을 찾아내고 어떻게든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은 친절한 성격을 지닌 사카키에 이끌려 귀찮아하면서도 관계의 얽힌 매듭을 풀어준다. 그렇게 새로운 사람들과 친분을 쌓으며 도리이의 닫힌 생활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하는데, 그것이 기쁘면서도 한편으로 도리이가 자신에게서 떠나는 날이 올 것을 두려워하는 사카키. 그래도 괜찮다. 내가 울면 같이 눈물을 흘려주는 진짜가 지금 곁에 있으니까.

 


心の中に棲む人と暮らせば、幸せも不幸せも、本物が手に入るぞ。
僕は、本物が欲しい。
僕は、本物になりたい。
僕は、本物の青空を夢見ながら、歩いてゆく。
鳥井の隣で。
마음속에 사는 사람과 살면 행복도 불행도 진짜를 얻을 수 있다.
나는 진짜를 갖고 싶다.
나는 진짜가 되고 싶다.
나는 진정한 푸른 하늘을 꿈꾸며 걸어간다.
도리이의 곁에서.


태어난 년도 외에는 성별이나 실제 모습 등을 공개하지 않는 복면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의 펜 네임 ‘사카키 쓰카사’는 이 데뷔작에서 따온 거라고 한다. 엘러리 퀸처럼.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성인 것 같다는 중론에다 여성작가 앤솔로지에 자주 작품이 수록되는 걸 보면 아무래도 성별은 여성인 듯싶다는 추측에 힘을 더하는 게 바로 이 작품이다. 페미니스트적인 언급과 여성이 당하는 고충에 대한 절절한 묘사에 지루함에도 불구하고 공감을 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 말이다. 사실 작가의 성별 자체는 중요한 게 아니고 굳이 밝히지 않겠다는 작가의 의도에 따라주는 것이 도리겠지만, 편견덩어리의 속물인 관계로 자꾸만 따지게 되는 걸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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