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미스터리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東野圭吾의 인기 시리즈 중 ‘갈릴레오 시리즈’에 이어 이번에는 ‘가가 형사 시리즈’ 정리편이다. 아는 것도 많고, 취미도 풍부한 저자이기에 작품은 점점 더 다채로운 분야로 펼쳐지고 있지만, 그래도 첫 시리즈의 주인공인 ‘가가 형사’에게 남다른 애착을 갖고 계시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가가 교이치로加賀恭一郎 시리즈’는 드라마와 영화에서 ‘신참자新参者 시리즈’라 불리는데 일조하며 그야말로 대박이 난 작품이 바로 일본의 국민배우 ‘아베 히로시’가 가가 형사 역으로 등장한 드라마 <신참자>다. 그러나 이는 8번째 시리즈로, 처음 가가 형사가 소개된 건 거의 데뷔 초기인 1986년이었다. 냉철한 머리, 뜨거운 심장, 빈틈없이 날카로운 눈매로 범인을 쫓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에 대한 따뜻한 배려를 잃지 않는 형사 가가 교이치로. 이 캐릭터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손에서 태어난 이래, 그의 작품 속에서 20년 넘게 성장해왔다.
또 다른 인기 시리즈 ‘갈릴레오’는 트릭의 과학적 해명을 주체로 하고 있는데 반해, ‘가가 교이치로’는 범죄에 관련되는 인간 드라마를 그린다는 점에서 커다란 차이점이 있다. 특히 가가 형사의 경우 아마추어이던 첫 등장이후 착실히 성장해가는 캐릭터로 작품이 진행될수록 그에 대한 인생 역사가 차례차례 밝혀진다는 점이 시리즈를 읽는 묘미로 작용한다. 더구나 끝내 범인을 밝히지 않는 이색적인 스토리도 포함되는 등 마니아를 생산하기 딱 좋은 구성으로 전개되고 있는 작품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시리즈이지만 생각보다 작품 수는 많지가 않아서 2021년 현재 총11편이 발표되었다. 11권째는 조금 모호한 부분이 있으므로 제외한다면, 국내 출간작은 총10편이 제대로 갖춰져있다.
제1탄
졸업: 설월화 살인 게임 卒業―雪月花殺人ゲーム
(1986)
시리즈 제1작은 가가 교이치로의 대학시절 이야기로 시작된다. 대학동료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탐색하는 탐정 역으로 등장한 가가는 졸업 후 일단 교사가 되기는 했으나, 어떤 사건을 계기로 교사와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해 아버지의 뒤를 이어 경찰관으로 전직하게 된다. 시리즈의 원점이 되는 첫 작품이므로 입문서라 할 수 있다.
제2탄
잠자는 숲 眠りの森
(1989)
이제 가가는 경시청 수사 1과의 순사 부장이다. 유명 발레단 사무실에서 살해사건이 발생했다. 용의자는 여성 발레 단원으로 정당방위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어지는 제2, 제3의 살인. 사건을 담당하게 된 가가는 복잡하게 얽힌 사건의 진상에 착실히 다가간다. 로맨틱한 이야기 속에 아직 서툰 가가 형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제3탄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 どちらかが彼女を殺した
(1996)
가가는 전작의 영향으로 관할서인 네리마서練馬署에서 형사로 근무하고 있다. 지방 경찰서에 근무하는 야스마사는 끔찍이 사랑하는 여동생의 시체를 발견하고 복수를 다짐한다. 여동생의 옛 연인, 아니면 오래된 친구.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 그의 범죄를 막기 위해 먼저 진상을 밝히고자 하는 가가. 소설 속에서 범인을 밝히지 않고 독자로 하여금 추리하게 한다는 획기적인 작품이다.
제4탄
악의 悪意
(1996)
경시청 수사 1과에 돌아온 가가. 인기 작가가 자택에서 살해된 사건을 담당하게 된 가가는 시체의 발견자가 과거 동료 교사였던 노노구치임을 알고 놀란다. 그가 쓰고 있던 수기를 토대로 한 수사로 범인을 알아낸 가가. 그러나 사건의 이면에는 충격적인 진실이 숨어있었다. 수기라는 형태의 1인칭 시점이 흥미로운 이 작품의 중요 포인트는 범인이 누구냐가 아니라 동기가 무엇인가에 있다.
제5탄
내가 그를 죽였다 私が彼を殺した
(1999)
스타 소설가와 시인의 결혼식을 앞두고 모든 언론과 대중의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신랑의 집에서 한 여성이 자살한다. 그 사실을 필사적으로 감추려 한 신랑이지만 결혼식 당일 수많은 하객들 앞에서 독살당하고 만다. 독약을 먹일 수 있었던 용의자는 3명. 모두 사건 뒤 자신이 죽였다고 술회한다. 도대체 범인은 누구냐고?! 전작인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와 함께 ‘궁극의 범인 찾기 소설’로 불린다.
제6탄
거짓말, 딱 한 개만 더 嘘をもうひとつだけ
(2000)
가가 시리즈로는 첫 단편집으로, 정통 사회파 미스터리 작가로 전향한 상징적인 작품집이기도 하다. 표제작을 포함해 다섯 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모두 거짓말이라는 주제를 갖고 있다는 점이 주목해야할 부분이다. 붕괴되는 가족, 무감성의 젊은 세대 등 개인의 비극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현 일본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헤치고 있다.
제7탄
붉은 손가락 赤い指
(2006)
세 가족의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되는 이 작품은 ‘어린 소녀의 죽음’이라는 살해 사건을 중심으로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묻는다. 이미 범인을 알려주고 시작하는 과감한 구성이면서도 끝까지 긴장감을 이끌어가는 역작이다. 아들이 저지른 살인을 은폐하기 위해 가족이 벌이는 행태를 간파한 가가. 악마의 결단은 슬픈 충격과 함께 가슴을 파고든다. 가가의 사촌이자 수사 1과 형사인 마쓰미야 등장.
제8탄
신참자 新参者
(2009)
관할서인 니혼바시日本橋서에 막 부임한 ‘신참자’ 가가 형사. 이번 소설의 주 무대가 되는 도쿄 니혼바시의 닌교초 거리는 지금도 옛 에도의 정취가 살아 숨 쉬는 곳으로, 독특한 정서가 흐르는 지역의 특성을 살린 이야기가 그려지고 있다. 사건과 직접 관계가 없는 주변 인물이 등장하면서 가가의 수사는 그들의 시점으로부터 ‘인정’이라는 수수께끼를 풀어간다는 독특한 구성이 탁월한 작품이다.
제9탄
기린의 날개 麒麟の翼
(2011)
역시 무대는 니혼바시다. 칼에 가슴을 찔려 사망한 중년 남자. 피를 흘리면서도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니혼바시의 기린상 앞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간 이유는 무엇일까. 두 시간 뒤에 한 청년이 불심 검문을 피하다 차에 치여 의식불명이 된다.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된 청년에게 비난이 쇄도하는데, 가가 형사는 이윽고 과거에 일어난 한 사건의 숨겨진 진실에 주목한다.
제10탄
기도의 막이 내릴 때 祈りの幕が下りる時
(2013)
경시청 형사 가가 교이치로가 파견 근무를 자청하면서까지 니혼바시 일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와 복잡한 그의 가정사가 드러나면서 시리즈 최대의 미스터리가 마침내 베일을 벗는다. 도쿄의 한 아파트에서 여성의 교살 사체가 발견되는데, 아파트 거주자는 행방불명이다. 둘 사이의 접점은 좀처럼 발견되지 않고, 줄곧 어릴 적 가출한 어머니의 행적을 찾던 가가는 뭔가 연결이 되어있음을 깨닫는다.
제11탄
희망의 실 希望の糸
(2019)
가가는 경시청 수사1과에 복귀했다. 그러나 이 작품의 주인공은 마쓰미야 형사로 가가는 조연 역할일 뿐이므로 과연 가가 시리즈로 분류해도 좋을지는 모호하다. 지유가오카에 있는 찻집의 오너가 가게 안에서 사체로 발견된다. 수사선상에 오른 인물은 전남편과 찻집의 단골손님. 두 사람 모두 사건 당시의 알리바이도 있고 동기 또한 찾을 수 없지만, 각각 뭔가를 숨기고 있는 듯하다. 가가의 수수께끼가 풀렸기에 이젠 뒷방으로 물러난 것인지, 조금 서운하기도 한 기분...
가가 교이치로 시리즈가 처음 영상으로 제작된 건 1993년 드라마 <잠자는 숲>으로, 이때의 가가 역은 배우 야마시타 신지가 연기했다. 솔직히 히가시노 게이고가 대대적인 유명세를 타기 전의 작품인데다 주인공 역의 배우 역시 인기스타도 아닌 관계로 후속작을 그대로 이어가기에는 무리가 따랐을 것이다. 2010년 아베 히로시를 가가 역으로 맞이함으로써 <신참자>라는 이름으로 가가 교이치로 시리즈는 화려하게 부활했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용의자X의 헌신>으로 나오키상을 수상한 이후 집필한 가가 시리즈인 만큼 의의 또한 크다고 볼 수 있겠다.
연속드라마
신참자 新参者
(2010)
가가 형사의 진면목이 가장 잘 드러나는 건 니혼바시서에 근무할 시기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서민들의 생활과 옛정취가 남아 있는 닌교초를 무대로 삼은 것이 신의 한 수가 아닐까. 무엇보다 이 작품을 통해 예리한 시각과 따스한 인간미가 어우러진 인물 가가 교이치로라는 캐릭터는 아베 히로시에게 딱 들어맞는 옷이었음이 증명되었다.
스페셜드라마
붉은 손가락 赤い指
(2011)
신참자 가가 교이치로 재등장〜新参者 加賀恭一郎再び! 개인적으로 가장 먼저 접한 가가 형사가 <붉은 손가락>이었다. 당시 상당히 인상적이었던 데다 일본드라마 특히 일본 미스터리에 빠지게 된 계기가 된 작품이기도 해서 가가 시리즈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명작으로 추천한다. 스페셜한 재등장에 선택된 것만 봐도 그 완성도를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영화
기린의 날개麒麟の翼
(2012)
극장판 신참자〜劇場版・新参者〜 기린의 날개 역시 니혼바시라는 무대의 특성을 잘 살린 작품이기에 스크린에 담기에도 매력적인 요소가 가득하다. 영상화된 신참자 시리즈에서는 배우 미조바타 준페이가 연기하는 마쓰미야 형사의 활약 또한 아베 히로시가 맡은 주인공 가가 교이치로의 행보에 든든한 지원군이 된다.
스페셜드라마
잠자는 숲 眠りの森
(2014)
신참자 가가 교이치로~新参者 加賀恭一郎 가장 로맨틱한 스토리로 전개되기 때문인지 또다시 드라마로 제작되었다. 1993년판과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원래는 가가 형사가 니혼바시서에서 신참이었기 때문에 붙은 제목이지만, 어떻게 보면 원작 2탄인 이 작품에서 드디어 경시청 형사가 된 가가의 이야기가 펼쳐지므로 이때도 신참자이긴 하다.
영화
기도의 막이 내릴 때 祈りの幕が下りる時
(2018)
가가 교이치로의 사연이 밝혀지는 이야기인 만큼 이런저런 단편들은 뛰어넘더라도 최종단락과도 같은 이 작품은 봐야하지 않겠는가. 영화화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 아닐 수 없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가가 교이치로 시리즈’는 등장인물의 인간사를 중심으로 따라가는 재미가 있다는 걸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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